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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으로 보는 역사

[발명으로 보는 역사]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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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시계의 역사에 따른 변화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시계는 정말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해온 물건 중 하나인데요?

그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형태와 종류로 지금까지 발전을 해왔습니다.

 

이런 시계가 얼마나 다양하게 우리와 함께 했는지 벌써부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ㅎㅎ

그럼 지금부터 시계의 역사에 따른 변화를 알아보겠습니다!


1. 인류 최초의 시계, 해시계 (기원전 3500년경)

해시계는 인류가 최초로 만든 시계이고, 무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림자를 이용한 시간 측정 방식을 통해 최초로 등장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시계로 가장 유명한 나라는 따로 있는데요?

 

바로 이집트입니다.

 

이집트는 '오벨리스크' 라고 하는 구조물을 통해 더욱 정교한 해시계를 만들었는데

이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자신들이 믿던 태양 종교를 상징해서 만들어졌고,

동시에 높이 솟은 기둥은 해시계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시계는 거대한 오벨리스크부터 휴대용으로까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등 여러 나라에서 사용했었지만 먹구름으로 인해 해가 가려지거나, 밤이 되면 사용 자체를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고, 해가 없이도 작동하는 시계들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Photo by Mohamed Ahmed on Unsplash



2. 기술의 시작, 기계식 시계 (13세기 ~ 14세기)

중세 시대에 처음 등장한 기계식 시계는 수도원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당시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사들은 종교적으로 매일 규율을 지키고 밤낮으로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정확한 시간은 누구보다 중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는 해시계와는 다르게 밤낮이나 기후에도 영향받지 않는 기계식 시계를 고안했고, 이 초기 기계식 시계는 무게추와 톱니바퀴를 이용해 움직였습니다. 쉽게 말해 무게추가 낙하하면서 발생하는 힘이 기어로 전달되어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이었고 일정한 속도로 시간을 유지해 주기 위해 '탈진기'라는 장치도 사용했습니다!

 

이 초기 기계식 시계는 해시계에 비해 여러 부분에서 굉장히 정교해진 것 같았지만 단점이 존재했는데요? 가장 큰 단점은 시간의 오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시계만 보더라도 시간의 오차가 일 5 ~ 20초 대로 굉장히 작지만 이때 기계식 시계의 시간에 오차는 무려 몇십 분 단위였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시계를 사용하는 목적이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분과 초까지 정확할 필요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만 시대가 발전함의 따라 정확한 시간을 꾸준히 측정할 수 있는 시계들이 여러 방면에서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기계식으로도, 디지털로도 거의 오차가 없는 정확한 시간들이 측정되고 있지만 만약 하루에 몇 번이나 몇십 분 간격으로 오차 범위가 발생하는 시계가 현대까지 이어져 왔다면 세계대전만 생각하더라도 정확한 시간에 결집해서 목표를 타격하는데 큰 문제가 생기겠죠?

 

꼭 전쟁이 아니라 일상에서 시간의 관련된 일들만 생각하더라도 정말 피곤한 일들이 많고요.

 

아무튼 초기 기계식 시계는 시간의 오차 범위가 크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종이 치는 구조로서 많은 수도원에서 사용됐고 당시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을 얻었습니다.

초기 기계식 시계, 종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Photo by Mark Boss on Unsplash



3. 손안에 담긴 혁신, 태엽시계 (16세기 ~ 17세기)

태엽시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이제 수도원에서 시작된 기계식 시계는 수도원을 넘어 도시 한가운데 시계탑의 형태로 확산되었는데요?

14세기부터는 유럽 여러 도시에서 '공공 시계' 가 설치되었고, 이 공공 시계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공공 장치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렇게 최초의 시계였던 해시계부터 자연력이 아닌 기계력으로 시간을 알리기 시작한 기계식 시계를 거쳐

시계는 다시 한번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태엽시계의 등장입니다.

 

태엽시계를 통해 인류는 드디어 공공이 아닌 개인이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는데 이런 태엽시계의 등장에는 기존의 무게 추 방식인 기계식 시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계를 소형화 화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발전 욕구가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최초의 휴대용 태엽시계는 16세기 초에 독일에서 발명되었는데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최초의 휴대용 시계인

'뉘튼베르크의 달걀' 입니다. 뉘튼베르크는 독일의 도시이고 이곳에서 '페터 헨라인' 이라는 기술자가 정확히는 1510년, 최초로 휴대용 시계를 만들었는데 이 시계의 모양이 마치 달걀과 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에 이 시계의 이름이 뉘튼베르크의 달걀 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럼 이 태엽시계는 어떻게 작동할까요?

  1. 금속 태엽을 감아 에너지를 저장
  2. 이스케이프먼트 (탈진기)를 통해 태엽이 풀리면서 정확성을 높임
  3. 그렇게 일정하게 전달된 에너지로 기어들이 돌아가면서 시간을 가리킴

태엽시계는 이렇게 작동하면서 더이상 무게추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이 말은 곧 소형화가 가능하다는 뜻이었죠. 실제로 앞서 언급한 인물인 페터 헨라인을 통해 소형화가 됐고요. 또 이런 소형화는 휴대용 시계의 시작을 알린 것이기 때문에 시계의 디자인 다양화를 이룩하게 한 첫 발걸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태엽,기어,시계
태엽시계를 포함한 많은 시계들은 기어로 힘을 전달한다 Photo by Lukas Tennie on Unsplash



4. 시간을 잡는 진자의 리듬, 진자시계 (17세기 ~ 18세기)

이제 시계는 태엽식 시계에 도달하기까지 정말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인류는 시계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렸는데요? 바로 진자시계의 등장입니다. 이 진자시계의 등장으로 시계의 역사에서 가장 큰 고질병이었던 '시간의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됐는데 이 시간의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크게 기여한 원리가 바로 '진자의 등시성' 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처음 발견한 원리인 진자의 등시성은 쉽게 말해 진자가 한번 왕복할 때 진폭과 무게에 상관없이 진자의 주기가 일정하다. 라는 건데요? 이 성질은 작은 진폭일 때 특히 정확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이 원리를 이용해 시간의 정확도를 잡은 최초의 진자시계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원리를 가지고 최초의 진자시계가 1656년, 네덜란드의 과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에 의해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진자시계의 등장으로 인간은 시계의 단순한 기술 개선을 넘어 시간을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시대를 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나눴던 것처럼 이때까지의 시계는 정밀해봤자 오차 범위가 몇 분이나 됐지만 이 진자시계의 등장으로 오차 범위가 무려 몇십 초 안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정확도를 가지게 된 진자시계는 더 이상 시간을 재는 용도를 넘어 여러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별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게 되면서 천문학 부분에도 많은 기여를 했고, 사회적으로는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서 새로운 시간의 리듬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렇게 하위헌스는 시간이 단순히 흐른다는 것을 넘어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실현시켰지만 이런 하위헌스의 진자시계에도 단점이 존재했습니다.

 

1. 이동에 취약하다.

 

진자는 흔들림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계가 흔들리면 정확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배, 마차, 전투 상황 등 흔들림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이동 상황에서는 시계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 부피가 크다.

 

진자시계는 구조상 진자의 왕복운동을 위한 공간이 필수였기 때문에

벽에 걸거나 바닥에 세우는 방식으로만 작동할 수 있어서 손목시계나 휴대용 시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이 진자시계는 정확도가 크게 향상된 부분에서 시계와, 과학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동에 민감하고 부피가 크다는 점에서 개인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정확한 손목시계의 형태까지로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진자운동
진자시계의 핵심기술 진자의 움직임 Photo by Sunder Muthukumaran on Unsplash



5. 항해의 시간, 크로노미터 (18세기~)

진자시계는 정밀함을 끌어올린 시계였지만 앞서 나눴던 것처럼 움직이는 공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움직임에 제약이 걸리는 시계라면 파도가 심하게 요동치는 배 안에서는 어떨까요? 당연히 사용할 수 없겠죠. 그러나 18세기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항해가 활발했던 시기, 배가 바다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되었었죠.

 

당시 바다에서 항해를 할 때에 위도를 찾는 방법은 비교적 쉬웠으나 경도를 찾는 일은 상당히 어려웠는데요.

배가 당장 위치한 곳을 알기 위해서는 경도 계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 경도를 알기 위해서 배 위에서도 오차 없이 정확한 시각을 잴 수 있는 시계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항해를 위해 발명된 오차 없는 시계가 바로 크로노미터 입니다.

 

이 크로노미터 시계는 영국의 존 해리슨에 의해 처음으로 이 세상에 등장했는데, 존 해리슨은 173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여러 모델들을 개발했고, 1761년 드디어 시계 역사를 바꿀 H4 크로노미터 시계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해리슨은 이 시계로 대서양 항해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영국정부가 2만 파운드의 상금을 걸고 추진했던 항해용 시계 개발의 큰 기여를 했고 오랜 세월을 거쳐 이 상금을 모두 수여받았습니다. 정말 멋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개발된 크로노미터 시계는 당시에 정말 큰 패러다임을 불러왔는데 이 오차가 거의 없는 엄청난 시계는 영국의 해군력을 강화시키고 무역로를 확대시키며, 보다 정확한 경도 측정으로 지도와 항로의 정확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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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미터로 열린 항해의 길 Photo by Sebastien Gabriel on Unsplash



6. 수많은 변화, 손목시계 (19세기~)

18세기 중반, 존 해리슨의 크로노미터는 항해의 정확성을 높이고 인류의 시간 인식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이후 19세기는 겉보기엔 눈에 띄는 발전이 적었지만, 시계 기술이 보다 정교해지고 산업적으로 체계화된 시기인데요?

 

기계식 시계의 내부 구조는 점점 더 정밀하게 개선되었고 월썸(Waltham), 해밀턴(Hamilton) 등 시계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부품의 표준화, 공정 분업을 통해 정확한 시계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도 시계는 여전히 주머니에 넣는 회중시계가 대세였고

시간을 보기 위해서는 여전히 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 시계의 역사를 바꿔놓는 아주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누구나 알듯이 전쟁은 정신없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기 때문에 전장에서 병사들이 회중시계를 품속에서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일은 무척 어렵고 또 위험한 일이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시각에 포격, 돌격 등 공격 개시를 해야 하는 실전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한 손으로 즉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손목시계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왔고

결국 처음에는 여성용으로 여겨지던 손목시계가 군용으로도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손목시계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물이나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튼튼하게 고안되었고, 또 야광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등 여러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도 남성들이 손목시계를 계속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손목시계는 일상 속에서 대중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시계는 단순한 시간 측정기를 넘어서 개인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이후 1920년~30년대에 들어서면서 손목시계는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갖는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특히 스위스 브랜드들이 본격적인 손목시계 디자인과 무브먼트를 개발하면서 시계는 정확성, 내구성, 심미성을 모두 갖춘 개인화된 정밀 기기로 발전하게 됩니다.

 

  • 1926년 Rolex Oyster 세계 최초의 방수 손목시계
  • 1931년 Rolex Perpetual 세계 최초의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탑재 시계
  • 1933년 Incabloc System 등장 시계의 충격보호 시스템

1차 세계 대전,군용 시계
1차 세계 대전은 시계의 역사를 바꿨다 Photo by Museums Victoria on Unsplash



7. 쿼츠 혁명, 전자시계 (20세기~)

시간이 흘러 1969년 12월 25일. 일본의 세이코에서는 아스트론이라는 시계를 발표합니다. 세이코에서 발표한 쿼츠 아스트론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쿼츠 손목시계인데 이 발표로 시계 역사는 또 한 번 엄청난 패러다임을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쿼츠시계는 기본적으로 전기를 받으면 수정 발진기가 일정한 진동수로 진동하는데, 이 특성을 이용해서 극도로 정밀한 시간 측정이 가능한 시계로서 쿼츠시계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이코에서 등장한 이 쿼츠 아스트론으로 인해 1970년대에 시계 시장은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쿼츠시계는 왜 엄청난 변화를 끌고 왔을까?

 

1. 기계식 시계 대비 정밀도가 뛰어나고 유지관리가 쉽다.

 

쿼츠시계는 배터리만 교체하면 수년간 작동할 수 있기에 수명이 길고, 유지관리 면에서 보더라도 정기적으로 오버홀이 필요한 기계식 시계에 비해 딱히 관리할 것도 없죠. 또 충격과 온도 변화에 강하면서, 수정에 진동으로 작동하는 쿼츠시계는 당연히 기계식 시계보다 오차 부분에 있어 정밀도도 더 뛰어났습니다.

 

2. 더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손목시계.

 

앞서 말했듯이 쿼츠시계는 충격과 환경 변화에도 강했는데, 그래서 일상생활이나 스포츠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자 부품을 활용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제조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에 기계식 시계보다 더 튼튼하고 저렴하게 대중들에게 판매되었죠.

 

이러한 점들 때문에 쿼츠시계의 등장은 스위스 시계 산업도 크게 흔들었는데 일본의 저가 쿼츠 시계들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시계의 중심지였던 스위스의 수많은 시계 브랜드들은 폐업하고, 합병하였습니다. 거의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을 정도였죠. '쿼츠 파동' '쿼츠 혁명' 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쿼츠시계는 또 한 번 시계 역사에 대격변을 일으켰었고, 이제 시계는 누구나 손목에 찰 수 있는 일상용품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정말 대중적으로 다양한 디자인과 개인의 스타일을 담는 패션 악세사리로도 자리잡았고요.

쿼츠 기계,세이코
쿼츠시계의 아버지, 세이코 Photo by Michael Surazhsky on Unsplash



 

네! 이렇게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온 시계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해와, 별, 물 등 자연력을 통해 만든 시계들부터 기계력을 이용한 시계들, 또 그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결국에는 현재 시계의 형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역사를 정리하면서 저 역시 시계의 매력에 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시계의 역사는 단순한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기술과 문화가 녹아들어 있는 이야기니까요!

 

지금까지 '시계의 역사에 따른 변화' 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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